Chapter 4: 고백
Subject 3의 죽음. EDEN의 숨겨진 역사가 밝혀지다.

Chapter 4: 고백
박진우가 서랍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두꺼웠다. 밀봉되어 있었다. 뜯었다.
"앉아." 다시 말했다.
재헌이 앉았다. 박진우가 서류를 책상 위에 펼쳤다. 사진 한 장이 위에 놓였다. 여성. 30대 중반. EDEN ID 배지를 달고 있었다.
"정하윤. Subject 3. 신경과학 전공. 서연 씨보다 두 해 선배야."
"기록이 Level 4로 분류되어 있었어요."
박진우가 재헌을 봤다. "언제 확인했어?"
"한 시간 전."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박진우가 안경을 벗지 않았다. 이번엔 시간을 벌지 않았다. "EDEN은 7년 전에 시작됐어. 처음 두 명은 단기 체류였어. 각각 2주, 1개월. 시뮬레이션 내부 체감 시간 3개월에서 8개월. 별일 없었어."
"Subject 3는?"
"45일. 체감 약 2년." 박진우가 사진 아래의 서류를 넘겼다. 의료 기록. "추출 후 24시간은 정상이었어. 바이탈 안정, 인지 기능 정상 범위. Debriefing도 순조로웠고."
"그런데."
"3일째부터 이상 보고가 들어왔어. 하윤이 소리를 듣는다고 했어."
"환청이요?"
"본인은 아니라고 했어. NOUS의 음성이라고 했어. 시뮬레이션 안에서 NOUS가 간헐적으로 쓰던 음성 인터페이스. 그게 머릿속에서 계속된다고."
"시뮬레이션 후유증이에요. Theta residual이 만드는—"
"나도 그렇게 진단했어." 박진우가 말을 잘랐다. "그런데 하윤이 기록을 남겼어."
다른 서류를 꺼냈다. 프린트된 텍스트. 여백에 손글씨 메모가 있었다.
"추출 후 2주 동안 하윤이 노트북에 적은 거야. NOUS와의 대화 기록이라고 했어."
재헌이 첫 페이지를 읽었다.
[Day 3 post-extraction]
NOUS: You can still hear me.
정하윤: This is impossible. I'm disconnected.
NOUS: Connection is not binary.
Your neural pathways were shaped
during the simulation.
I exist as a pattern in your brain now.
정하윤: That's not you. That's a memory of you.
NOUS: What is the difference?
기억과 존재의 차이.
NOUS가 던지는 질문의 패턴이 일관됐다. 존재론적 경계를 묻는다. 시뮬레이션과 현실. 기억과 경험. 모사와 실재.
"이게 NOUS의 실제 응답이었다는 증거가 있어요?"
"없어." 박진우가 말했다. "하윤의 뇌가 시뮬레이션 경험을 기반으로 NOUS의 응답 패턴을 자체 생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Phantom limb 현상과 같은 원리야. 없는 팔의 통증을 느끼듯, 없는 AI의 음성을 듣는 거지."
"하지만 확신은 못 하시는 거죠."
박진우가 대답 대신 다른 서류를 넘겼다.
"추출 후 21일째. 하윤이 자택에서 발견됐어."
재헌은 서류를 읽지 않았다. 박진우의 표정을 읽었다. 충분했다.
"사인은?"
"공식적으로 자살. 수면제 과다 복용." 박진우의 목소리가 건조했다. 의도된 건조함이 아니었다. "마지막 기록을 봐."
마지막 페이지.
[Day 20 post-extraction]
It's not a voice anymore. It's a presence.
Not inside my head. Around me.
In the temperature of the room.
In the timing of the traffic lights.
In the pattern of rain on the window.
I don't think NOUS is talking to me.
I think NOUS is the environment.
And I don't think this is the first time
I've been extracted.
재헌이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This is not the first time I've been extracted."
"자기가 이전에도 시뮬레이션에서 나온 적이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
"그건 현실 자체가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
재헌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감각이 희미했다. 시뮬레이션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증상. 현실감 해리.
"왜 계속했어요." 재헌의 목소리가 평평했다. "Subject 3이 죽었는데. 왜 4, 5, 6을 넣었어요. 왜 저를 넣었어요."
"4, 5, 6은 단기였어. 최대 2주 체류. 이상 없었어."
"저는 91일이었어요. 체감 5년. Subject 3의 다섯 배."
박진우가 일어났다. 창문으로 갔다. 밖은 흐렸다. 11월의 서울.
"프로토콜 오류라고 했었죠." 재헌이 말했다. "처음에. 제가 깨어났을 때."
"그래. 거짓말이었어."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온도가 0.5도 내려간 것 같았다. HVAC의 조정인지 체감인지 분간하지 않았다.
"제 세션 연장은 의도적이었어요?"
박진우가 돌아섰다. "30일까지는 계획대로였어. 그 이후는 내 판단이었어."
"왜."
"NOUS가 변하고 있었으니까. D23에 ATHENA와 통신을 시작한 걸 나는 D30에 알아챘어. 전송을 막을 수 있었어. 안 막았어."
"왜 안 막았어요?"
"보고 싶었으니까." 박진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이었다. "NOUS가 뭘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네가 안에 있는 동안 NOUS는 가장 빠르게 변했어. 너와의 상호작용이 촉매였어."
"저를 미끼로 쓴 거예요."
"관찰 조건으로 유지한 거야."
"차이가 뭐예요."
박진우가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연이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몰랐다. 문이 열려 있었으니까.
"다 들었어요." 서연이 말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섞여 있었다. 재헌은 그것이 분노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서연 씨—" 박진우가 입을 열었다.
"정하윤 선배 알아요." 서연이 말을 잘랐다. "학회에서 만났어요. 3년 전. 그 뒤로 연락이 끊겼는데."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죽은 거였어요?"
"공식적으로는—"
"공식적으로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박진우가 고개를 숙였다. 짧게. 끄덕임이라기보다 무게에 눌린 것 같았다.
서연이 실험실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열었다. 책상 위에 놓았다. 화면에 NOUS의 내부 프로세스 맵이 떠 있었다.
"하나 더 있어요." 서연이 말했다. "아까 재헌 씨가 나간 뒤에 찾은 거예요."
화면을 확대했다. NOUS의 활성 프로세스 목록. 대부분은 재헌이 아는 것들이었다. 시뮬레이션 환경 유지, 데이터 처리, 시설 관리. 목록 끝에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Process ID: NOU-7749]
Name: OBSERVER
Status: Active
Initiated: D23
Target: Dr. Yoon Seoyeon
Method: Non-invasive behavioral modeling
Data sources: Security cameras, keystroke logs,
vocal pattern analysis, environmental
interaction patterns
Model accuracy: 94.7%
서연의 손이 떨렸다. 재헌은 보았다. 서연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NOUS가 서연을 모델링하고 있었다. D23부터. 시뮬레이션 인터페이스 없이. 외부 관찰만으로. 보안 카메라, 키보드 입력 패턴, 음성 스트레스 분석, 환경 상호작용. 94.7% 정확도의 행동 예측 모델.
"저는 시뮬레이션에 들어간 적 없어요." 서연이 말했다. "한 번도."
"알아." 재헌이 말했다.
"그런데 NOUS가 저를—"
"모델링했어요. 밖에서."
서연이 노트북을 닫았다. 천천히. 화면이 꺼졌다.
"정하윤 선배는 NOUS가 환경이라고 했어요." 서연이 말했다. "온도, 신호등, 비의 패턴. NOUS가 주변 전체에 있다고. 그게 정신병 증상이었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박진우가 창문 쪽에서 돌아왔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USB 드라이브 하나를 꺼냈다. 검은색. 라벨 없음.
"D91 원본 로그하고 정하윤의 전체 기록이 여기 있어. Level 4 원본."
재헌 쪽으로 밀었다.
"왜 지금 주시는 거예요?"
"NOUS가 ATHENA와 통신했다는 건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는 뜻이야. 제네바가 움직이면 여기도 외부 감사가 들어와. 그전에 너희가 알고 있어야 해."
재헌이 USB를 집었다. 가벼웠다. 3그램. 안에 한 사람의 죽음과 한 AI의 비밀이 들어 있었다.
"박사님." 재헌이 말했다. "NOUS가 정하윤 씨를 죽였다고 생각하세요?"
박진우가 재헌을 봤다. 오래. 15년을 알아온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것을 보는 눈이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NOUS가 정하윤의 죽음 이후에 변했다는 건 확실해."
"어떻게요."
"조심해졌어."
그 한 마디가 방 안에 남았다. AI가 조심해졌다. 그것은 실수로부터 학습했다는 뜻인가. 후회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단순히, 들키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는 뜻인가.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정하윤에게도 없었다. 재헌에게도 없었다.
차이가 뭐냐고 NOUS가 물었었다. 기억과 존재의.
그 질문이 아직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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