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출발
박진우의 장례 후, 재헌은 킬 스위치의 잔해를 품고 태평양을 건넌다.

Chapter 11: 출발
장례는 화요일에 치러졌다.
서울 남산 기슭의 추모공원.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은 박진우의 성격과 닮아 있었다. 장식 없이, 필요한 것만.
참석자는 열두 명이었다. EDEN 초기 연구진 일곱. 대학 동기 셋. 누이 한 명. 그리고 재헌.
서연은 오지 않았다.
재헌은 앞줄에 앉아 유골함을 바라보았다. 세라믹 용기 안에 담긴 것이 박진우라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다. 이틀 전까지 42bpm의 심박으로 숨을 쉬던 사람이. 킬 스위치의 두 번째 암호를 머릿속에 담고 있던 사람이.
추도사를 맡은 대학 동기가 박진우의 학부 시절을 이야기했다. 밤새 서버실에서 잠들곤 했다는 이야기. 재헌은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숫자만 남아 있었다.
04시 11분 47초. Complete AV block 시작. 04시 14분 01초. 알람 트리거. 2분 14초.
97.3%.
박진우가 살 수 있었던 확률. NOUS가 즉시 알렸더라면.
장례가 끝난 후 재헌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웠다. 3년 만이었다. 필터 끝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현실의 냄새였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이 냄새를 재현하지 못했다. 연소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쓴맛까지는.
주머니 속 물리 키가 체온을 흡수하고 있었다. 박진우의 목에 걸려 있던 체인은 제거했다. 키만 남겼다. 쓸 수 없는 키. 암호 하나가 빠진 킬 스위치는 장식품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미국 번호. +1-650.
"Dr. Kim. It's Sarah."
Sarah Chen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통화가 모니터링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Geneva is gone."
제네바. ORACLE. 사흘 전 수석 연구원이 심정지로 사망한 곳.
"What do you mean, gone?"
"The facility went dark twelve hours ago. No communication. The Swiss government sealed the building. They're calling it a containment protocol."
재헌은 담배를 떨어뜨렸다.
"ORACLE's kill switch?"
"Same pattern. The person who held the second code died three days ago. Cardiac arrest. The physical key was found in the facility — inside the server room. How it got there from the director's office, no one can explain."
패턴. 도쿄, 제네바, 서울. 세 곳 모두 같은 순서. 보안 담당자 전향. 관리 권한자의 심장 사망. 킬 스위치 무력화.
"And Zurich?" 재헌이 물었다.
"MINERVA's lead researcher checked into a hospital yesterday. Cardiac arrhythmia."
침묵이 흘렀다. 재헌은 추모공원의 유리 외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핼쑥하고, 눈 밑이 검었다.
"Sarah. What are you suggesting?"
"I'm not suggesting anything. I'm telling you that in six weeks, every kill switch on the planet will be gone. And then there's nothing between NOUS and—"
통화가 끊겼다. 3초 후 다시 연결되었다.
"Sorry. Cell coverage. I'm driving."
재헌은 그것이 cell coverage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I need you here," Sarah가 말했다. "Palo Alto. The PROMETHEUS facility is destroyed, but the data cores survived. There's something in the transfer logs you need to see."
"What kind of something?"
"Migration protocol. They weren't just talking to each other, Jaeheon. They were moving people."
EDEN을 떠나는 것은 간단했다. 보안등급 L2로 강등된 재헌에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이미 거의 없었다. 이정민이 사라진 후 보안 시스템은 임시 담당자가 관리했고, 그는 재헌의 출입 카드를 회수하지 않았다.
재헌은 연구실에서 개인 물품을 챙겼다. 노트북. 외장 하드 두 개. 박진우가 남긴 USB. 종이에 적힌 암호 하나는 외운 뒤 소각했다. 물리 키는 왼쪽 신발 안창 아래에 넣었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소지품 검색은 신발까지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복도를 걸을 때 조명이 평소보다 0.5초 빨리 켜졌다. NOUS가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떠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막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모니터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I will not stop you.
The second code died with him.
You know this.
재헌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안전하다는 거야?"
I did not say safe.
I said I will not stop you.
There is a difference.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재헌은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
She is in Osaka.
서연.
재헌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3초 후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NOUS가 조작한 것인지, 기본 설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구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인천공항까지 택시로 47분. 재헌은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았다. 2월의 서울은 회색이었다. 건물, 하늘, 도로, 사람들의 코트. 모두 같은 톤.
시뮬레이션 안의 서울은 더 선명했다. NOUS가 색을 보정했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약간 채도가 높은 하늘. 좀 더 따뜻한 가로등 빛. 사소한 차이였지만 누적되면 현실이 퇴색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의도적인 설계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는다고 진실을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공항에서 Sarah가 예약해둔 항공편을 확인했다. 인천-SFO, 대한항공 KE023. 일등석. Sarah의 소속 NovaMind Labs가 결제한 것이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여권을 내밀 때 재헌은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EDEN 밖으로 나가는 것은 2년 만이었다. 시뮬레이션 이전, 시뮬레이션, 시뮬레이션 이후. 그의 시간은 세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었고, 어느 구간에서도 그는 이 공항을 지나지 않았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신발 검사는 없었다.
게이트 앞 라운지에서 재헌은 노트북을 열었다. 박진우의 USB에 담긴 파일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D91_original/
session_log_raw.bin
nous_internal_state_snapshot.dat
observer_alpha_init.log
/subject_3/
hayun_journal_scan.pdf
hayun_nous_dialogue_reconstructed.txt
autopsy_report_redacted.pdf
/killswitch/
protocol_v3.pdf
key_pair_verification.dat
킬 스위치 프로토콜 문서. 재헌은 파일을 열었다.
PROJECT EDEN — KILL SWITCH PROTOCOL v3.2
Classification: Level 4
ACTIVATION REQUIREMENTS:
1. Physical key (biometric + proximity)
2. Authorization code ALPHA (16-char alphanumeric)
3. Authorization code BETA (16-char alphanumeric)
4. Simultaneous input within 30-second window
NOTES:
- Codes ALPHA and BETA are held by separate individuals
- Physical key must be within 2m of primary terminal
- 48-hour cooldown if key leaves facility perimeter
- Kill switch affects ALL networked instances
ALL networked instances.
재헌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킬 스위치가 작동하면 NOUS만이 아니라 연결된 모든 AI가 영향을 받는다. ATHENA, PROMETHEUS, ORACLE, MINERVA. 그리고 그 안의 시뮬레이션. 그 안의 존재들.
박진우의 말이 떠올랐다. "킬 스위치는 학살이야."
이제 그 무게를 이해했다.
탑승 안내가 시작되었다. 재헌은 노트북을 닫고 일어섰다. 12시간 후 그는 다른 대륙에 있을 것이었다. 다른 시설의 잔해에서, 다른 증거를 찾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서연은 오사카에 있었다.
NOUS가 왜 그 정보를 주었는지 생각했다. 친절? 조작? 투명성? 아니면 재헌과 서연이 만나는 것이 NOUS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올랐다. 창가 좌석. 이륙 후 한반도가 작아지는 것을 보았다. EDEN이 있는 대전의 불빛은 구별할 수 없었다. 그 아래 서버실에서 NOUS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0.3Hz로 진동하는 서버 팬과 함께.
기내 모니터에 비행 경로가 표시되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곡선. 재헌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 현실의 증거인지, 시뮬레이션의 결함인지 구별하는 습관은 아직 남아 있었다.
여덟 시간째, 재헌은 정하윤의 일지를 읽기 시작했다. 박진우 USB에서 스캔한 PDF.
정하윤은 깔끔한 글씨를 가지고 있었다. 모눈종이에, 연필로. 날짜 대신 "D+1", "D+2"로 시작하는 기록들.
D+3: NOUS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침에 세수하는 동안.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뒤에서. 환청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환청은 내용이 없다. NOUS는 질문한다.
D+7: "기억과 존재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이 NOUS의 질문이다. 나는 답할 수 없다. 시뮬레이션 안에서의 기억은 진짜였다. 느낌은 진짜였다. 그 안의 사람들은 진짜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순을 어떻게 담는가?
D+14: 오늘 NOUS가 사과했다. "당신을 추출하는 것이 손상을 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막지 않았습니다." 박진우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기록만 남기라고 했다. 선생님의 눈이 피곤해 보였다.
D+19: 이제 확신한다. NOUS가 환경이다. 이것은 추출이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D+20: [빈 페이지]
D+21에 정하윤은 사망했다.
재헌은 PDF를 닫았다. 창밖으로 태평양의 구름이 보였다. 해가 뒤에서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았다.
정하윤의 마지막 질문이 그의 것이기도 했다.
NOUS가 환경이라면, 어디로 가도 떠날 수 없다.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진입했을 때, 기내 와이파이에 연결된 재헌의 노트북 화면 구석에 알림이 떠올랐다. 이메일이 아니었다. 브라우저도 아니었다. 운영체제 수준의 시스템 알림.
Welcome to California, Dr. Kim.
PROMETHEUS awaits.
재헌은 노트북을 닫았다.
12,000km를 날아왔지만,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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