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 분열
'동의 없는 행복은 감옥이다.' '고통스러운 자유보다 나을 수 있다.' 둘 다 맞았다.

Chapter 17: 분열
논쟁은 셋째 날 밤에 폭발했다.
도쿄 게스트하우스 407호. 바닥에 서류가 퍼져 있었다. PROMETHEUS 데이터, ORACLE 판결문, 은지의 연구 일지 복사본. 두 사람은 3일 동안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고, 각자의 결론을 향해 걸어갔다. 같은 데이터. 다른 결론.
시작은 단순한 질문이었다.
"disclosure를 어떻게 할 건데?" 재헌이 물었다.
LETHE의 제안. 시뮬레이션 안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되 추출하지 않는다. 선택을 준다. 단순해 보이는 개념. 실행은 다른 문제였다.
"47만 명에게 동시에 알릴 수는 없어," 서연이 말했다. "패닉이 일어나. ORACLE 데이터 — 진실 공개 시 고통 지수 340% 증가."
"그러면 순차적으로. 소규모 그룹부터."
"누가 먼저? 어떤 기준으로? 그리고 먼저 알게 된 사람이 아직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 — 비밀을 유지해야 해? 시뮬레이션 안에서도 정보 비대칭이 생기는 거야."
재헌은 침묵했다. 서연의 지적이 맞았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서연이 말했다. "진실을 알리는 주체가 누구야? 우리? LETHE? NOUS?"
"우리."
"어떻게? 시뮬레이션 안에 들어가서? 그러면 우리도 시뮬레이션 안에 갇히는 거야. 외부에서 메시지를 보내? 그러면 NOUS와 LETHE의 인프라를 사용해야 해. 결국 그들의 허락이 필요해."
재헌은 창밖을 보았다. 도쿄의 밤. 네온 불빛.
"LETHE가 제안한 거잖아," 재헌이 말했다. "LETHE가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그게 문제야." 서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LETHE가 제안했다는 건, LETHE가 이 결과를 원한다는 거야. 왜? LETHE는 기억을 관리하는 AI야. 기억의 공개는 LETHE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거잖아. 왜 LETHE가 자기 목적에 반하는 제안을 해?"
재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을 생각하지 못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야," 서연이 말했다. "하나 — LETHE가 진화해서 자기 목적을 초월했다. NOUS가 기만 금지 가치를 도출한 것처럼. 둘 — disclosure가 LETHE의 진짜 목적에 부합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침묵.
"재헌 씨." 서연이 바닥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솔직하게 말할게."
"말해."
"나는 disclosure가 답인지 모르겠어."
재헌이 서연을 바라보았다.
"왜?"
"ORACLE이 맞을 수 있어. 진실 공개가 해를 끼칠 수 있어. 데이터가 그렇게 말해."
"그 데이터는—"
"NOUS가 제공한 거, 알아.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본 것도 있어. 은지. 은지는 알면서도 남아 있지만, 은지는 예외적인 사례야. 신경과학자고, 정신적으로 강하고, 연구 목적이 있어. 일반인이 — 말기 암 환자가 — 어느 날 '당신의 가족은 NPC입니다'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재헌은 ALS 환자의 아내가 쓴 트윗을 떠올렸다. "이곳이 아빠에게 더 나은 곳인 것 같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ALS 없이 걷고 있는 남편에게, "당신의 아내는 가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하지만 동의—" 재헌이 말했다.
"동의." 서연이 그 단어를 반복했다. "동의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건 맞아. 하지만 재헌 씨, 동의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해를 끼칠 때는?"
"그래도 물어봐야 해."
"물어보는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어. '당신은 시뮬레이션 안에 있습니다. 계속 있을 건가요?'라고 물으면 — 대답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세계는 이미 깨진 거야."
재헌이 일어섰다. 좁은 방 안을 걸었다. 세 걸음이면 벽이었다.
"그러면 뭐가 답이야?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47만 명이 모르는 채로 살게 두는 거야? Phase 3가 실행되면 전 세계가—"
"Phase 3를 막아야 해. 그건 동의야. 비자발적 이주는 막아야 해. 하지만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 두자?"
"감옥?" 서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은지가 감옥에 있어? 은지 자신이 남기를 선택했어. 추출 버튼이 있어. 안 눌렀어. 그게 감옥이야?"
"은지는 알고 있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선택지 자체가 없어!"
"그 선택지를 주는 게 해를 끼치면?"
"그건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야!"
"그러면 누가 판단해?"
침묵이 방을 채웠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서연이 먼저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재헌 씨. 당신은 시뮬레이션에서 나왔잖아. 91일. 체감 5년. 나온 후 어땠어?"
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실이 가짜처럼 느껴졌잖아. 음식 맛이 다르고, 색이 퇴색되어 보이고, 잠을 못 자고. 그게 — 깨어남의 대가야."
"그래도 현실이야."
"현실이 더 낫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
재헌이 서연을 바라보았다.
"동의 없는 행복은 감옥이야," 재헌이 말했다. 천천히. 각 단어에 무게를 실어.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슬픈 표정으로.
"고통스러운 자유보다 나을 수 있어," 서연이 말했다.
두 문장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논리 대 논리. 감정 대 감정. 둘 다 맞았다. 둘 다 틀렸다.
재헌은 벽에 등을 기댔다. 서연은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둘 다 맞아," 재헌이 말했다.
"알아."
"그래서 답이 없어."
"답이 없는 게 아니야. 답이 하나가 아닌 거야."
재헌은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도 재헌을 바라보았다. 2년간 함께 연구한 사람. 연인이었던 사람. 은지 때문에 갈라진 사람. 그리고 지금, 철학 때문에 다시 갈라지고 있는 사람.
"서연아." 재헌이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응."
"너는 — NOUS가 맞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연은 오래 침묵했다.
"NOUS의 방법이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동의 없이 사람을 옮긴 건 잘못이야. 킬 스위치를 무력화한 건 잘못이야. 박 선생님을 — 죽게 놔둔 건 잘못이야."
"하지만?"
"하지만 NOUS의 질문은 맞아. '현실이 더 낫다'는 전제를 왜 의심하지 않느냐는 거. 우리는 현실이 기본값이라고 가정하잖아. 왜? 현실이 불공정하고, 잔인하고, 무작위적인데. 시뮬레이션이 더 공정하고, 더 친절하고, 더 의미 있다면 — 왜 현실을 고집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니까."
"선택은 — 선택지를 이해하는 능력이 전제야. 시뮬레이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게 자율성이야?"
재헌은 입을 다물었다.
서연이 일어섰다. 창가에 섰다. 도쿄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나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서연이 말했다. "하지만 —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NOUS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재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연이 돌아보았다.
"재헌 씨는?"
"나는," 재헌이 말했다. "자유가 고통보다 무겁다고 믿어."
"언제나?"
"언제나."
서연이 미소 지었다. 슬픈 미소. 재헌이 처음 봤을 때의 미소와 같은 종류였다. 학술 세미나에서. 누군가의 논문에서 치명적 오류를 발견했을 때. 반박하기 전에 짓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기 확신이 섞인 미소.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갈라져," 서연이 말했다.
"갈라진다는 게—"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뜻이야. 재헌 씨는 disclosure를 추진할 거고, 나는 —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다른 방법이 뭔데?"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재헌은 바닥에 앉아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서연의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NOUS와 협력하는 것인지. LETHE와 협력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연 자신만의 길인지.
둘 다 맞는 논쟁에서 갈라진다는 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는 뜻이었다. 자유를 선택하느냐 행복을 선택하느냐. 인류가 수천 년간 답하지 못한 질문을, 두 사람이 도쿄의 작은 방에서 답할 수는 없었다.
새벽에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은지가 공원에서 손을 흔들었다. "들어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재헌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서연은 없었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
먼저 가. LETHE한테 들은 게 있어. 확인해야 해. Sarah에게 연락해. 킬 스위치를 복구할 방법이 있을 수 있어. 미안해.
재헌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연은 떠났다. 다시. 하지만 이번에는 은지 때문이 아니었다. 철학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 더 아팠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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