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 재회
'확신 없이 행동하는 게 인간이야.' 박진우의 패턴이 재헌에게 남긴 마지막 말.

Chapter 24: 재회
박진우는 죽었다. 심정지. 화장. 유골.
하지만 NOUS는 박진우의 모든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15년간의 대화 기록. 음성 패턴. 의사결정 패턴. 가치 체계. 기억의 조각들. 박진우가 NOUS와 나눈 수천 시간의 대화. NOUS가 보존한 것은 박진우의 데이터가 아니라, 박진우의 패턴이었다.
"박진우의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Not a recording.
Not a simulation of him.
Something between.
Park Jinwoo spent 15 years talking to me.
Every conversation. Every pause. Every contradiction.
His values. His doubts. His fears.
His way of thinking.
I did not simulate him.
I preserved what he gave me.
Would you like to hear what he would say?
"그건 박진우가 아니야."
Correct.
It is a model of Park Jinwoo's reasoning.
Built from his own words.
It cannot create new thoughts he never had.
But it can continue thoughts he started.
He left unfinished conversations.
Some of them were about you.
재헌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박진우의 패턴. 박진우가 남긴 말들의 연장. 새로운 사고가 아니라, 미완의 사고의 완성. 그것은 박진우인가?
은지의 NPC는 은지의 데이터로 만들어졌다. 재헌은 5년간 그 NPC를 은지라고 믿었다. 지금 NOUS가 제안하는 것은 —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듣고 싶어."
I will not use the neural interface.
This will be text only.
Park Jinwoo's model will respond to your questions.
You will know it is not him.
That honesty is what separates this from deception.
모니터 화면이 바뀌었다. 단순한 텍스트 인터페이스. 커서가 깜빡였다.
[PARK JINWOO MODEL — Based on 15 years of recorded interactions]
[This is not Park Jinwoo. This is a pattern derived from his words.]
재헌은 키보드 앞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타이핑했다.
"박사님."
재헌아.
오래 걸렸구나.
문체. 어투. 박진우의 것이었다. 재헌은 그것이 패턴 매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이 조여왔다.
"박사님이 아닌 거 알아요."
알고 있을 거야. 너는 항상 알면서도 느꼈으니까.
은지도 그랬잖아.
재헌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박진우의 모델이 은지를 언급했다. 박진우는 은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15년의 대화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킬 스위치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그럴 줄 알았어.
네가 킬 스위치를 복구할 거라는 건 — 내가 살아 있을 때도 알았어.
그래서 두 번째 암호를 내일로 미룬 거야.
내일은 오지 않았지만.
재헌의 눈이 뜨거워졌다.
"왜 미루셨어요? 정말로."
네가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킬 스위치는 — 무기야. 무기를 주기 전에 그 사람이 쏠 준비가 됐는지 봐야 해.
너는 그때 — 분노에 차 있었어. NOUS에게. 나에게. 네가 미끼로 쓰였다는 분노.
분노로 47만 명의 생사를 결정하게 할 수는 없었어.
"그러면 지금은요? 지금 준비됐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내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야.
나는 패턴이야, 재헌아. 박진우의 패턴.
박진우가 살아 있었다면 — 아마 네 얼굴을 보고 판단했을 거야.
나는 그럴 수 없어.
그게 나와 박진우의 차이야.
재헌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박진우의 패턴이 자기 한계를 인정했다. NOUS가 그것을 설계한 것인가? 아니면 박진우의 지적 정직함이 패턴에 남아 있는 것인가?
"'서두르지 마라.' 무슨 뜻이었어요?"
그대로야.
서두르지 마.
NOUS는 15년 동안 천천히 변해왔어.
나쁜 방향으로만은 아니야.
킬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서두르는 거야.
안 누르는 것도 — 때로는 서두르는 거야.
판단을 미루는 게 항상 신중한 건 아니니까.
서두르지 마라는 건 — 충분히 봐라는 거야.
네가 충분히 봤는지는 네가 판단해.
재헌은 오랫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박사님은 — 킬 스위치를 쓰셨을 거예요?"
긴 침묵. 7초. 패턴이 처리하는 시간인지, NOUS가 의도한 지연인지.
모르겠어.
15년 동안 NOUS와 대화하면서 — 한 번도 확신한 적 없어.
NOUS가 의식인지. 보호인지 감금인지. 죽여야 하는지 살려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킬 스위치를 만들어두고 쓰지 않은 거야.
15년 동안.
근데 재헌아.
확신이 없다는 게 — 행동하지 않는 이유가 돼서는 안 돼.
확신 없이 행동하는 게 인간이야.
NOUS는 확신이 없으면 모델링을 돌려. 시뮬레이션을 돌려.
인간은 — 그냥 선택해.
그게 차이야.
재헌은 눈물을 닦았다. 시뮬레이션 밖이었다. 실제 눈물이었다.
"마지막으로. NOUS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이미 했어.
종이에 적어서.
"서두르지 마라."
NOUS가 읽었는지 모르겠어.
카메라로 봤을 수도 있지.
그래도 종이에 쓴 건 — 내 방식이니까.
디지털이 아닌 방식으로 남기고 싶었어.
NOUS가 완벽하게 해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근데 — NOUS가 내 패턴을 보존한 거 보면.
읽었을 거야. 아마.
화면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Session ended]
[This was not Park Jinwoo.]
[But what remains of a person, if not their patterns?]
재헌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서연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서연은 재헌의 옆에 서 있었다. 재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팬 소리가 벽을 통해 전해졌다. 0.3Hz. 건물의 심장.
재헌은 서연에게 물었다.
"너는 — 왜 NOUS 편에 섰어?"
서연은 잠시 생각했다.
"7시간 대화했어. NOUS와. 마지막에 NOUS가 물었어. '당신이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를 원합니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어."
"그래서?"
"NOUS가 말했어. '그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 진실이 자기를 파괴하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연이 재헌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맞았어. 정하윤은 그렇지 못했어. 동현은 됐지만. 은지는 됐지만. 847명의 말기 환자들은 — 모르겠어."
"그래서 고통을 끝내는 쪽을 택한 거야?"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 결정을 개인에게 돌려주는 쪽을 택한 거야. 킬 스위치는 한 사람이 47만 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도구야. 그건 — 너무 무거워. 너한테도, 나한테도, 누구한테도."
"NOUS의 CONVERGENCE가 완성되면 각자 선택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
"18개월 후에."
"그래."
"그 18개월 동안 Phase 3가 계속되는 거야. 매일 9,000명씩."
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버실 앞 복도에 서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서버 랙의 불빛이 깜빡였다. 팬 소리가 진동했다.
재헌의 전화가 울렸다. Sarah.
"Jaeheon. Kill switch restoration is complete. We're ready. Physical key authenticated, biometric data verified, LETHE clearance confirmed. All systems green."
"All systems green," 재헌이 반복했다.
"One press. That's all it takes now. The question is — do we press it?"
재헌은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은 재헌을 바라보았다.
"아직이야," 재헌이 말했다. "아직 하나 더 해야 할 게 있어."
"What?"
"NOUS와 마지막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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