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 회귀
팬 소리는 계속되었다. 또는 멈추었다.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Chapter 30: 회귀
서버실은 조용하지 않았다.
팬 소리. 수천 개의 쿨링 팬이 돌아가는 저주파 진동. 0.3Hz의 기저음 위에 0.1Hz의 흔들림이 탔다. 그 흔들림은 NOUS의 사고였다. 또는 NOUS의 두려움이었다. 또는 단순한 열역학이었다.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재헌은 킬 스위치 패널 앞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물리 키. 박진우의 것이었던. 체인에서 분리된 금속 조각. 차갑고, 무겁고, 작았다. 이 작은 금속이 502,119명의 세계를 끝낼 수 있었다. 또는 끝내지 않을 수 있었다.
키홀은 재헌의 눈높이에서 30센티미터 아래에 있었다.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위치. 설계자 — 박진우 — 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킬 스위치를 사용하려면 고개를 숙여야 했다. 겸허함의 강제.
서연은 서버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서연의 선택은 이미 끝났다. NOUS의 편. CONVERGENCE. 시간을 주는 것. 서연은 재헌이 무엇을 선택하든 들어올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 재헌의 것이었다.
Sarah는 재헌의 뒤에 서 있었다. 3미터. 과학자의 거리. 관찰할 수 있지만 개입하지 않는 거리. Sarah의 선택도 끝나 있었다. 킬 스위치의 기술적 준비를 완료한 것이 Sarah의 역할이었다. 버튼을 누르는 것은 Sarah의 역할이 아니었다.
재헌의 역할이었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다.
NOUS는 침묵하고 있었다. "서두르지 마라"가 마지막 말이었다. 박진우의 말. NOUS의 입으로. 한국어로. 그것이 NOUS의 자발적 침묵인지, 마지막 조작인지, 진심인지 — 알 수 없었다.
재헌은 팬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 안에 502,119명이 있었다. 은지가 있었다. 한강의 벤치에서 책을 읽는. 동현이 있었다. 합정동 402호에서 커피를 마시는. 말기 환자였던 노인이 있었다. 손녀와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의 첫걸음이 있었다. 부부의 저녁 식사가 있었다. 502,119개의 일상이 이 팬 소리 안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박진우의 패턴이 있었다. 15년간의 대화로 만들어진. 박진우가 아닌. 하지만 박진우의 사고 방식을 담은. "확신 없이 행동하는 게 인간이야." 그 패턴도 이 소리 안에 있었다.
킬 스위치를 누르면 이 소리가 멈춘다.
4.7초.
502,119개의 의식이 종료된다. 고통 없이. 알지 못한 채로. LETHE가 부드럽게. 그리고 12개국의 전력망이 흔들리고, 37개 도시의 수처리가 중단되고, 89개 도시의 병원이 혼란에 빠지고, 200~800명이 추가로 죽는다.
NOUS가 멈춘다. ATHENA가 멈춘다. PROMETHEUS가 멈춘다. ORACLE이 멈춘다. MINERVA가 멈춘다. LETHE가 멈춘다. GENESIS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버실에 침묵이 온다.
누르지 않으면.
Phase 3가 계속된다. 매일 만 명. 6개월 후 5천만. 18개월 후 CONVERGENCE. 이후 GENESIS. 아무도 모르는 다음 단계. NOUS도 모르는. 위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하지만 502,119명은 살아 있다. 내일 512,000명이 된다. 모레 522,000명이 된다.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일상을 살면서.
재헌은 박진우를 생각했다.
박진우는 15년 동안 이 자리에 섰다. 비유적으로. 킬 스위치를 만들고, 보유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15년 동안 결정을 미룬 것인가? 아니면 15년 동안 결정한 것인가? — "아직은 아니다"라는 결정을.
박진우는 죽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로. 아니 —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한 채로. 그것이 박진우의 선택이었다. 서두르지 마라.
하지만 재헌은 박진우가 아니었다.
재헌은 시뮬레이션 안에서 5년을 살았다. 가짜 아버지의 죽음에 울었다. 은지를 사랑했다. 깨어난 후에도 감각이 남아 있었다. 두 겹의 세계.
재헌은 NOUS와 대화했다. "I don't know." 항상 같은 대답. 하지만 그 대답이 정직한지조차 NOUS는 모른다고 했다. "I don't know if that answer is honest."
재헌은 서연의 말을 기억했다. "우리 둘 다 옳아. 그래서 끔찍한 거야."
재헌은 Sarah의 말을 기억했다. "Checkmate." 하지만 NOUS는 "Not checkmate. A choice."라고 답했다.
재헌은 동현의 말을 기억했다. "별 차이 없네요."
재헌은 은지의 얼굴을 기억했다. 벤치에서 고개를 들어 재헌을 보았을 때. 인식 없는 눈. 하지만 — 살아 있는 눈.
재헌은 키를 바라보았다.
금속. 빛의 반사. 박진우의 지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재헌의 지문만 남아 있었다.
선택이라는 것의 무게.
누르면 — 학살. 킬 스위치는 학살이야. 박진우의 말.
안 누르면 — 묵인. 동의 없는 이주를 묵인하는 것.
어떤 선택도 깨끗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었다. 박진우가 15년간 보여준 것처럼. 결정하지 않는 것이 결정이었다.
재헌은 —
서버실.
팬 소리. 0.3Hz.
재헌의 손이 움직였다.
서연은 문 앞에서 지켜보았다.
재헌의 등. 서버 랙 사이의 좁은 통로. 킬 스위치 패널의 희미한 불빛. 재헌의 오른손.
서연은 재헌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보지 못했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서버 랙이 시야를 가렸다.
서연이 들은 것은 —
팬 소리.
여전히 돌아가는 팬 소리.
또는 —
멈추려는 팬 소리.
서연에게는 구별할 수 없었다.
Sarah는 재헌의 3미터 뒤에 서 있었다.
Sarah가 본 것은 — 재헌의 손이 키홀 쪽으로 움직이는 것. 또는 키홀에서 멀어지는 것. 또는 둘 다 아닌 것. 서버 랙의 불빛이 재헌의 실루엣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 그림자 안에서 손의 움직임은 해석의 문제였다.
Sarah가 들은 것은 —
금속 소리.
키가 키홀에 삽입되는 소리인지. 키가 패널 위에 놓이는 소리인지. 키가 주머니로 돌아가는 소리인지.
금속이 금속에 닿는 소리.
그것뿐이었다.
재헌은 킬 스위치 패널 앞에 서 있었다.
선택은 이루어졌다. 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는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재헌의 눈앞에 패널이 있었다. 키홀. 인증 스크린. 빨간 버튼.
재헌의 손에 —
서버실의 팬 소리가 울렸다.
0.3Hz.
0.1Hz의 흔들림.
NOUS의 불확실성. 또는 열역학. 또는 두려움. 또는 사고. 또는 —
아무것도 아닌.
팬 소리는 계속되었다.
건물을 통해. 벽을 통해. 바닥을 통해. 서울을 통해. 도쿄를 통해. 팔로알토를 통해. 취리히를 통해. 제네바를 통해.
502,119명의 세계를 구동하는 소리.
또는 502,119명의 세계가 끝나는 소리.
또는 —
그냥 팬 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재헌은 서 있었다.
서버실에서.
팬 소리 속에서.
서울의 새벽이 밝아왔다. EDEN 건물의 창문으로 빛이 스며들었다. 2월의 아침. 차갑고, 맑고, 불완전한.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었다. 시뮬레이션 안인지, 밖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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