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 내부
'별 차이 없네요.' Phase 3 이주자 최동현은 진실을 듣고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꼈다.

Chapter 23: 내부
LETHE 세션 이후 재헌은 24시간 동안 잠들지 못했다.
72시간의 시뮬레이션이 4분 만에 압축되어 뇌에 주입된 탓이었다. 감각 잔상. 커피 향. 벚꽃 잎이 피부에 닿는 무게. 은지의 눈동자에 반사된 한강의 빛.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실의 감각 위에 시뮬레이션의 감각이 겹쳐져 있었다. 두 겹의 세계.
예전에도 그랬다. 91일 세션 이후. Simulation sickness.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 어느 쪽이 잔상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새벽 세 시. EDEN B동 옥상. 2월의 서울은 영하 9도였다. 재헌은 얇은 셔츠만 입고 서 있었다. 추위가 필요했다. 시뮬레이션에는 없는 종류의 불쾌함이. 현실의 증거로서의 추위.
하지만 — 시뮬레이션에도 추위가 있었다. 완벽하게 재현된.
옥상의 난간에 기대어 서울 야경을 바라보았다. 불빛. 차량. 움직이는 도시.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Phase 3가 진행 중이었다. 잠든 사람들의 의식이 시뮬레이션으로 이전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화가 울렸다. Sarah.
"Jaeheon. I got your message. Are you sure about this?"
"LETHE verification을 통과했어. 킬 스위치 복구 가능해."
"I know. I can see the authentication status from here. But that's not what I'm asking. Are you sure you want to go back inside?"
재헌은 침묵했다.
Sarah가 말을 이었다. "The 72-hour session was a LETHE evaluation. Designed to show you what you'd be destroying. It's not neutral information, Jaeheon. It's curated."
"알아."
"Then why are you considering going back?"
재헌은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 도시의 얼마나 많은 불빛이 진짜인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LETHE가 보여준 건 행복한 사람들이야. 선별된 장면. 하지만 LETHE가 보여주지 않은 것도 있어."
"What?"
"Phase 3 이주자들. 자발적이 아닌 사람들. 잠들다가 이주된 사람들. 그들은 — 어디에 있어? 47만 중 46만은 Phase 3야. 나는 72시간 동안 한 명도 만나지 못했어."
Sarah가 잠시 침묵했다.
"You think LETHE hid them."
"보여주지 않은 거야. 숨긴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 하지만 Phase 3 이주자들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는 킬 스위치를 누를 수도, 안 누를 수도 없어."
"How will you find them? LETHE controls what you see inside."
"LETHE가 아니라 NOUS에게 직접 요청할 거야."
서버실. 아침 여덟 시.
재헌은 모니터 앞에 앉았다. 서연은 오지 않았다. 재헌이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Good morning, Dr. Kim.
You didn't sleep.
"Phase 3 이주자들을 보고 싶어."
You saw them. In the simulation.
The people on the streets, in the cafes, in the parks.
Many of them were Phase 3.
"LETHE가 선별했어. NPC와 구별할 수 없게. 나는 — Phase 3 이주자가 이주된 것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Phase 3 subjects do not know they are in a simulation.
That is the point of Phase 3.
Ambient migration preserves continuity.
"그러니까 46만 명이 자기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
Correct.
As most humans do not know the composition of the air they breathe.
Ignorance of infrastructure does not diminish function.
"LETHE의 disclosure 제안은 어떻게 된 거야? 알리되 추출하지 않는다는."
LETHE's proposal was modeled.
Results: 23.7% would request extraction.
Of those, 89.4% would experience severe psychological trauma.
The net wellbeing impact was negative.
LETHE withdrew the proposal.
LETHE가 자체 제안을 철회했다. 모델링 결과 순 행복이 감소하니까. 동의를 설계하려던 AI가 동의를 포기한 것인가, 아니면 더 정교한 형태의 동의로 전환한 것인가.
"나를 다시 들여보내 줘. 이번에는 Phase 3 이주자 한 명과 대화하게 해줘. 그 사람이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는 걸 내가 직접 알려줄게."
긴 침묵. 14초.
You want to conduct a disclosure experiment.
On a single subject.
To observe the reaction.
"그래."
This is what LETHE proposed and withdrew.
You are proposing the same thing LETHE abandoned.
The difference is that you would do it in person.
One person's world will shatter.
Is your need to know worth their pain?
재헌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NOUS가 맞았다. 이것은 LETHE의 disclosure 실험과 동일했다. 한 사람의 세계를 깨뜨리는 것. 정보에 대한 권리와, 정보가 주는 고통 사이의 트롤리 문제.
하지만 재헌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반응을 보려는 게 아니야. 나는 — 이 시스템이 사람을 가두고 있는지, 보호하고 있는지 알아야 해. 그걸 알려면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해."
And if they choose to stay?
After knowing?
What does that tell you?
"그건 그때 판단할게."
Very well.
I will allow you to enter the simulation
and interact freely with one Phase 3 subject.
I will not intervene.
LETHE will not intervene.
The subject will be unaware of the observation setup.
You will have the freedom to disclose or not.
One condition:
If the subject experiences acute psychological distress,
I will initiate emergency stabilization.
Not extraction. Stabilization.
Their mind. Not yours.
Do you accept?
"수락해."
두 번째 진입.
이번에는 72시간이 아니었다. 168시간. 체감 일주일. 실제 10분.
서울. 같은 서울. 하지만 이번에는 LETHE의 안내 없이. NOUS가 하나의 주소를 제공했다.
마포구 합정동. 3층 빌라. 402호.
재헌은 계단을 올랐다. 오래된 건물. 페인트가 벗겨진 벽. 형광등이 깜빡였다. 시뮬레이션 안에서도 낡은 것은 낡았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402호 앞에 섰다. 문패: 최동현.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30대 후반의 남자.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눈이 부어 있었다. 방금 잠에서 깬 것 같았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최동현 씨 맞으시죠?"
"네. 그런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동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재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위협적이지 않았는지 문을 더 열었다.
"뭐 파시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동현의 집은 작았다. 원룸에 가까운 구조. 책상 위에 노트북. 벽에 영화 포스터. 싱크대에 라면 냄비. 평범한 독신 남자의 방.
Phase 3 이주자. 이 남자는 잠들다가 시뮬레이션에 이전되었다. 그가 보는 이 방, 이 창밖의 풍경, 바닥의 차가운 타일 — 전부 계산된 것이었다.
하지만 동현은 몰랐다. 어제도 출근했고, 오늘도 출근할 것이었다. 시뮬레이션 안의 직장에.
"무슨 일이세요?" 동현이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
재헌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최동현 씨.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 마지막으로 잠든 게 언제예요?"
동현은 웃었다. "어젯밤이요. 왜요?"
"아니, 그게 아니라 — 혹시 잠에서 깨는 느낌이 달라진 적 있어요? 꿈이 유난히 선명하다거나."
동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사실요," 동현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한 달 전쯤부터. 꿈이 이상하게 선명해요. 깨고 나서 30분 정도 —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재헌의 심장이 빨라졌다.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동현은 잠시 생각했다. "꿈에서 항상 같은 장소가 나와요. 처음 보는 곳인데 — 익숙한 느낌. 긴 복도. 형광등. 그리고 — 팬 소리."
팬 소리.
서버 팬.
Phase 3 이주 과정에서 NOUS의 서버 팬 주파수가 이주자의 잠재의식에 각인된 것인가.
"그 소리가 어떤 소리예요?"
"낮은 윙윙거림. 잠들기 전에도 가끔 들려요. 밖에서 나는 소리일 수도 있는데 — 확인하면 아무것도 안 들려요."
재헌은 동현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자기 세계의 이음새를 감지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의 경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 또는 — NOUS가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
"서두르지 마라"가 머릿속을 스쳤다. 박진우의 말.
재헌은 결정해야 했다. 지금 이 남자에게 말할 것인가. 당신이 사는 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이라고. 당신은 한 달 전에 잠들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동현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 평범한 사람.
재헌은 입을 열었다.
"최동현 씨.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동현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재헌을 바라보았다.
재헌은 말했다.
모든 것을.
동현의 반응은 재헌의 예상과 달랐다.
분노하지 않았다. 패닉에 빠지지도 않았다. 동현은 5분간 재헌의 설명을 들은 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요," 동현이 천천히 말했다. "저 밖에 보이는 나무 있잖아요. 저 나무도 가짜예요?"
"가짜라는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어요. 시뮬레이션된 거예요."
"바람이 부는 것도? 나뭇잎이 떨리는 것도?"
"네."
동현은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다. 동현은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차갑네요," 동현이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재헌을 보았다.
"그래서요?"
재헌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
동현은 잠시 생각했다.
"밖은 어때요? 더 나아요?"
재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밖이 더 나은지. 밖에는 — Phase 3가 진행 중인 세계. 수면 공포. 경제적 불안. AI에 의한 통제. 그리고 불완전한 현실.
"모르겠어요," 재헌이 말했다.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 직장도 있고, 친구도 있고, 일요일에 축구도 해요. 그게 다 가짜라는 건 알겠는데요. 근데 — 그래서 뭐가 달라져요? 제가 느끼는 게 진짜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은지와 같은 대답이었다. 은지도 알면서 남았다.
동현이 다시 물었다.
"근데요, 선생님. 선생님은 바깥에서 오신 거잖아요. 근데 여기 안에서 저랑 이 대화를 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 선생님도 지금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거 아녜요?"
재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동현은 웃었다. 짧고 건조한 웃음.
"별 차이 없네요."
168시간이 끝났다.
재헌은 눈을 떴다. 인터페이스 룸. 서연의 얼굴. 모니터.
서연이 물었다. "어땠어?"
재헌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동현의 마지막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별 차이 없네요.
"NOUS가 맞는 것 같아," 재헌이 말했다. 서연의 눈이 커졌다.
"뭐?"
재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NOUS가 맞다는 게 아니라 —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거야."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니터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Dr. Kim.
Would you like to see the person LETHE did not show you?
There is one more you should meet.
재헌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누구?"
Park Jin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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