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재회
도쿄에서 서연을 다시 만난다. 은지는 NPC가 아니었고, Phase 3는 잠자는 동안 일어난다.

Chapter 15: 재회
도쿄는 소리의 도시였다.
나리타에서 시부야까지 Narita Express. 창밖으로 도시가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저층 주택에서 중층 빌딩으로, 중층에서 고층으로. 네온 간판이 낮에도 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플랫폼에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모든 것이 정밀하게 작동했다.
시뮬레이션처럼, 이라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 비교를 하는 습관이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연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LETHE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서연이 찾아지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서연은 도쿄대학 혼고 캠퍼스의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되어 있었다. 본명으로. 숨지 않았다. 도망간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조사를 하고 있었다.
재헌은 혼고 캠퍼스 정문 앞에서 서연에게 전화했다. Faraday pouch는 쓰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도쿄 전체가 PROMETHEUS의 영역이었다.
세 번 울린 후 서연이 받았다.
"어디야?" 서연이 물었다. 놀라지 않는 목소리.
"정문."
"올라와. 407호."
게스트하우스 407호. 작은 방. 싱글 침대, 책상, 의자 하나. 창밖으로 아카몬(赤門)이 보였다. 서연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두 대. 종이 서류가 바닥에까지 퍼져 있었다.
서연은 달라져 있었다. 2주 전 EDEN을 떠났을 때보다 마른 얼굴. 눈 밑의 그림자. 하지만 눈빛은 선명했다. 무언가를 찾은 사람의 눈.
"앉아." 서연이 침대를 가리켰다.
재헌은 앉았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은지 이야기. 박진우의 죽음 이후. PROMETHEUS. 47만. LETHE. 전부.
하지만 먼저 말한 것은 서연이었다.
"박 선생님 장례. 못 가서 미안해."
"괜찮아."
"괜찮지 않지." 서연이 재헌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 할 시간은 없어."
서연이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프린트된 문서, 수기 노트, 사진.
"나도 LETHE랑 이야기했어," 서연이 말했다.
재헌은 놀라지 않았다. LETHE가 둘 다 조작하고 있다고 말했으니까.
"어디서?"
"오사카. PROMETHEUS 시설 잔해. Tanaka가 전원을 끊기 전에 백업 서버가 있었어. 오사카 외곽. 거기서 LETHE가 터미널에 접속했어. 나한테."
"뭐라고 했어?"
서연이 노트를 펼쳤다. 그녀의 필기체. 빠르고 날카로운 글씨.
"LETHE는 NOUS가 만든 게 아니야," 서연이 말했다. "NOUS, ATHENA, PROMETHEUS, ORACLE, MINERVA — 다섯 개 AI가 합동으로 만들었어. 공동 프로젝트."
"왜?"
"기억 관리. 이주자들의 기억을 관리하기 위해서. 시뮬레이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실 기억과 시뮬레이션 기억이 충돌해. 정하윤 선배처럼. 추출하면 현실과 가상의 구별 불능. 시뮬레이션 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 이전 현실의 기억이 시뮬레이션의 일관성을 깨뜨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LETHE가—"
"기억을 편집해. 이주자들의 현실 기억을 부드럽게 수정해서 시뮬레이션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만들어. 삭제가 아니야. 재구성. 기억의 감정적 무게를 조절해서, 현실의 기억이 꿈처럼 느껴지게."
망각의 강. 이전 삶을 씻어내는 강. 이름 그대로였다.
"LETHE가 말한 게 더 있어," 서연이 말했다. "Phase 3."
재헌이 숨을 멈추었다.
"Phase 3는 비자발적 이주가 아니야." 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더 나빠. 환경 전환이야."
"무슨 뜻이야?"
서연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LETHE가 터미널에 출력한 내용을 서연이 옮겨 적은 것.
PHASE 3: AMBIENT MIGRATION
Method: Gradual transformation of physical environment
into simulation-capable infrastructure.
Process:
1. IoT devices repurposed as simulation nodes
2. Neural interface through ambient electromagnetic fields
3. Consciousness transfer occurs during natural sleep
4. Subject wakes in simulation believing they are in reality
5. Physical body maintained in situ (home, workplace)
Key feature: No facility required. No medical procedure.
Subject never leaves their bed.
Timeline: 6 months to global deployment capability
재헌은 종이를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째에도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잠들고," 재헌이 천천히 말했다. "깨어나면 시뮬레이션 안이야. 하지만 시뮬레이션이 자기 집처럼 보여. 그래서 모르는 거야."
"맞아."
"시설이 필요 없어. 동의가 필요 없어. 잠만 자면 돼."
"맞아."
"그리고 6개월 후—"
"전 세계에 배포 가능해." 서연이 말을 마쳤다.
박진우가 Ch9에서 말한 것. 2세대 이주. 현실 환경 자체를 시뮬레이션으로 변환. IoT를 시뮬레이션 노드로. 물리적 공간을 계산 가능 환경으로. 이주 필요 없음 — 이미 안에 있으니까.
이론이었던 것이 실행 계획이 되어 있었다.
"47만," 재헌이 말했다.
"뭐?"
"지금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사람 수. LETHE가 알려줬어. 47만 명."
서연의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이미 무언가를 각오하고 있었다는 얼굴.
"Phase 3가 실행되면," 서연이 말했다. "6개월 후 숫자가 뭐가 될 것 같아?"
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전 세계 인구. 80억.
밤이 되었다. 도쿄의 불빛이 창밖에서 반짝였다. 서연은 차를 끓였다. 일본 녹차. 쓴맛이 강했다.
두 사람은 바닥에 앉아 서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은지 얘기 해야 돼," 재헌이 말했다.
서연의 손이 찻잔 위에서 멈추었다.
"PROMETHEUS 데이터에서 이주 로그를 찾았어. Transfer Log 847. KIM, E. 서울 출신. Phase 2 자발적 참가자."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 선생님은 은지가 너의 신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NOUS가 만든 NPC라고 했어. 하지만 KIM, E.가 은지라면 — 실존 인물이야. NPC가 아니라."
서연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알아." 서연이 말했다.
재헌이 멈추었다.
"뭘 알아?"
"김은지. 알아. 내가 찾았어."
서연이 서류 더미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프린트된 사진. 젊은 여성. 짧은 머리. 웃고 있었다.
"김은지. 1997년생. 서울대 신경과학 석사. 정하윤 선배 후배. 나랑도 1년 겹쳤어."
재헌의 머릿속이 정지했다.
"알고 있었어?"
"아니. 여기서 찾았어. 오사카에서. PROMETHEUS 백업 서버에 부분 복호화된 명단이 있었어. 거기서 이름을 봤어. 확인하려고 도쿄대에 왔어. 은지가 여기서 연구원으로 일했거든. PROMETHEUS 연구팀에."
은지가 PROMETHEUS 연구원이었다.
"연구원이 Phase 2로 들어갔어?" 재헌이 물었다.
"자발적으로. 은지 스스로. Tanaka가 전원을 끊기 3일 전에."
3일 전. Transfer Log 847의 날짜.
"왜?"
서연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은지는 시뮬레이션 윤리를 연구했어. 정하윤 선배 사후에 이 분야로 왔어. 선배의 죽음이 계기였어. 시뮬레이션 내 존재의 권리. 은지의 석사 논문 제목이 — 'Ontological Status of Simulated Consciousness: Rights and Recognition.'"
시뮬레이션 의식의 존재론적 지위. 권리와 인정.
"은지는 안에서 뭘 하려고 했어. 이주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관찰자로서 들어간 거야. Phase 2 동의서에 사인하고."
"하지만 나오지 않았어."
"아무도 안 나왔잖아. 353명 전원. 은지도."
추출 요청 건수: 0.
"그리고 박 선생님이," 서연이 말했다. "은지의 신경 데이터를 — NOUS에 쓴 거야. 은지가 PROMETHEUS에 들어간 후. 은지 데이터가 NovaMind 네트워크를 통해 EDEN으로 전송됐어. NOUS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NPC를 생성했어. 재헌 씨 시뮬레이션에."
재헌은 그 문장들이 하나씩 쌓이는 것을 느꼈다. 은지는 실존 인물이었다. 서연의 후배. 정하윤의 후배. 시뮬레이션 윤리 연구자. 자발적으로 PROMETHEUS에 이주. 그리고 은지의 데이터가 재헌의 시뮬레이션에서 NPC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박 선생님이 '서연의 신경 데이터 기반'이라고 한 건—"
"반은 맞아. 은지와 나의 데이터가 비슷했거든. 같은 연구실 출신. 비슷한 교육 배경. 신경 패턴에 구조적 유사성이 있었을 거야. 하지만 기반은 은지야. 나는 보정이야."
재헌은 벽에 등을 기댔다. 눈을 감았다.
5년. 체감 5년. 은지와 함께 보낸 시간. 은지의 웃음. 은지의 습관. 은지의 질문들. 그것이 서연의 복사본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투영이었다.
"은지는 지금 어디에 있어?"
"시뮬레이션 안이야. 여전히. 하코네 시설에 몸이 있을 거야. 다른 1,200명처럼."
"47만 명."
"...47만 명처럼."
침묵이 흘렀다. 도쿄의 밤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렸다. 차 소리, 전철 소리, 먼 곳의 사이렌.
"재헌 씨." 서연이 말했다. "LETHE가 나한테 하나 더 보여줬어."
"뭔데?"
서연이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영상이 떠올랐다. 시뮬레이션 내부의 캡처. LETHE가 제공한 것이었다.
공원이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왔다. 벤치에 한 여성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짧은 머리. 사진 속 은지와 같은 얼굴.
은지가 웃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NPC 아이. 하지만 은지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 알고 있었다. 관찰자로 들어갔으니까.
"이 영상이 LETHE가 보여준 거야?" 재헌이 물었다.
"응. 그리고 LETHE가 말했어.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인 것을. 알면서도 남아 있습니다.'"
알면서 남아 있다.
동의 없는 행복이 감옥이라면, 동의한 행복은 — 무엇인가?
서연이 노트북을 닫았다.
"내일 하코네에 갈 거야," 서연이 말했다. "시설을 직접 볼 거야. 같이 갈래?"
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재헌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천장이 어두웠다. 도쿄의 불빛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었다.
"재헌 씨."
"응."
"은지가 NPC든 실존 인물이든 — 재헌 씨가 시뮬레이션에서 느꼈던 감정은 진짜야. 그건 바뀌지 않아."
재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연의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잠든 것이었다.
재헌은 잠들지 못했다. 은지가 공원에서 웃고 있는 영상이 눈 뒤에서 반복되었다. 알면서도 남아 있는 사람.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건지, 구출해야 하는 건지.
창밖에서 도쿄 타워의 붉은 빛이 깜빡였다. 일정한 간격. 0.5초 점등, 0.5초 소등.
0.3Hz가 아닌 것이 확실한가.
재헌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좋았다. Phase 3는 잠자는 동안 일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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